증오하는 입

혐오발언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 중 하나로, 혐오발언 규제의 편에 서 있습니다.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일본의 ‘재특회’와 비슷한 조직이 눈에 잘 들어오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만약 비슷한 일이 이미 발생했거나 발생하고 있다면. 일본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어떤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미리 살펴보는 것도 좋은 일이리라 생각합니다. 한편 재특회는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이며 여기서 재일은 자이니치를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례들은 실제 우리와도 꽤 관련이 있는 이야기 입니다.

일단 정의부터 살펴보고 넘어가겠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혐오합니다. 하지만 그 혐오의 의미가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논의를 위해서는 의미를 한정지어야 합니다. 그리고 ‘혐오’라는 번역어가 적절한가에 대한 논의는 많겠지만 마땅히 다른 표현을 찾는 것도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7쪽
혐오발언은 영어 ‘헤이트스피치Hate Speech’를 직역한 것으로 ‘증오언설’ ‘증오발언’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번역어로는 정확한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국제적으로 ‘헤이트 스피치’는 차별표현, 즉 차별을 선동하는 표현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

22쪽
(…) 증오범죄도 혐오발언도 결국 인종, 민족, 성에 따른 소수자minority 차별을 바탕으로 한 공격을 뜻한다. ‘혐오hate’란 일반적인 감정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소수자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재특회의 가두시위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전형적인 사례가 될 것입니다. 이 기사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재특회 관계자들은 2009년 12월부터 2010년 3월까지 세차례에 걸쳐 “(조선학교는) 북한의 스파이 양성소” “스파이 아이들도 조선반도로 돌아가라” 따위의 구호를 확성기에 대고 외치는 등 수업을 방해한 바 있다.
원문보기

 

25쪽
2013년 10월 7일 교토지방법원은 세 차례에 걸친 이 차별선동 가두시위가 단순한 불법 행위가 아니라 인종차별철폐조약에 규정된 인종차별에 해당한다고 인정하여, 1,220만 엔 손해배상과 학교 반경 200미터 이내에서 가두시위 등을 금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재특회에서는 가두시위 활동이 공익 목적의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재일조선인의 기본적인 자유와 평등을 막으려는 목적이 분명하다”라며 이런 주장을 일축했다. 게다가 피고의 인종차별 행위로 발생한 무형의 손해에도 “공정한 동시에 적정한 배상”이 되도록 가중해야 한다고 판결함으로써 고액의 손해배상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이는 인종차별철폐조약 6조를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종차별철폐조약 6조. “체약국은 권한 있는 국가법원 및 기타 기관을 통하여 본 협약에 반하여 인권 및 기본적 자유를 침해하는 인종차별 행위로부터 만인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고 구제하며 또한 그러한 차별의 결과로 입은 피해에 대하여 법원으로부터 공정하고 적절한 보상 또는 변제를 구하는 권리를 만인에게 보증한다.”

혐오발언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혐오발언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부터 정해야 합니다. 일단 저자가 보는 혐오발언이란 이렇습니다.

84쪽
이제 정리를 해보자. 혐오발언이란 넓게는 인종, 민족, 국적, 성별, 성적 지향과 같은 속성을 갖는 소수자 집단이나 개인에게 그 속성을 이유로 가하는 차별표현이다. 그리고 혐오발언의 본질은 소수자에 대한 ‘차별, 적대, 폭력의 선동(자유권규약 20조)’, ‘차별을 선동하는 모든 행위(인종차별철폐조약 4조 본문)’ 이자 표현에 의한 폭력, 공격, 박해이다.

혐오발언은 하나의 공격이며, 공동체에서 배제하려는 시도입니다.

90쪽
비판적 인종이론의 논객이자 일본계 미국인 법학자인 마리 마쓰다는 혐오발언이 소수자에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공포, 흥분, 호흡곤란, 악몽,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과도한 정신적 긴장, 고혈압, 정신질환, 자살까지 이르는 정신적 증상과 감정적 고통’을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한다.

95쪽
혐오발언은 소수자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효과가 있다. 소수자는 자괴감과 무력감 탓에 반론할 말을 잃는다. 뿐만 아니라 소수자가 피해를 호소하고 반론을 제기하면 이로 인해 새로운 공격을 유발하는 표적이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소수자는 피해를 호소하거나 반론하기를 두려워한다.

196쪽
그러나 혐오발언은 차별받는 집단을 침묵시키고 사회에서 배제하려는 것이다. 혐오발언은 사회에 차별과 증오, 폭력을 퍼뜨려, 평화와 평등을 전제로 문제를 논의해 해결한다는 민주주의 사회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역사 발전을 후퇴시킨다.

피해자들이 ‘사상의 자유시장 이론’에서 가정하는 것처럼 방어할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어렵다고 봅니다.

200-201쪽
혐오발언은 애초에 대항 언론의 전제, 즉 평등한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든지 논의에 참여하여 문제를 해결한다는 전제 자체를 파괴한다. 실제로 경제적-정치적-사회적으로 불평등한 사회에서 ‘사회의 구성원 누구든지 평등하게 참여한다’는 것을 전제로 삼는 ‘사상의 자유시장’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느냐 하는 근본적 문제가 있다.

203쪽
원래 혐오발언을 즐기는 사람은 자신은 안전지대에 자리잡은 뒤에 차별을 받고도 반격하기 어려운 입장에 놓인 사람을 표적으로 삼아 공격을 시작한다. 또 만약에 소수자가 반론한다 하더라도 이미 상대에게 멸시당하고 있기 때문에 반론이 효과가 없을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도 혐오발언은 대등한 논의를 전제로 하는 대항 언론이 성립할 수 없는 상황을 골라서 진행된다고 말할 수 있다.

한번 상상해보기 바란다. ‘구더기’ ‘바퀴벌레’ ‘조선인’이라 불리면서 어떤 대항 표현을 만들 수 있겠는가.

저자는 ‘지금’ 피해를 받고 있는 이들에게 주목해야 한다고 합니다. 저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혐오발언 규제의 편에 서있고, 적어도 최저선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94쪽
일반적으로 권력이 표현 내용을 규제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제약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국제인권법에서 표현의 자유에 관한 중심 규정은 자유권규약 19조 3항이다. 여기서는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데에는 특별한 의무 및 책임이 따른다”라고 하여, 타인의 권리나 신뢰의 존중 등을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인정한다.

195쪽
혐오발언을 ‘불쾌하다’거나 ‘부적절하다’는 식으로 가볍게 여기는 것은 혐오발언이 초래하는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인권침해와 사회 파괴라는 해악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268쪽
일본 사회가 진정으로 답해야 하는 것은 법 규제인가 표현의 자유인가 하는 선택이 아니다. 소수자 차별을 지금처럼 합법적으로 묵인해 차별당하는 이들의 괴로움을 계속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의 차별을 반성하고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물음에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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