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TED강연을 토대로 한, 이 작고 얇은 책에 많은 것을 얹을 수는 없습니다. 분량 탓에 많은 부분 인용하기도 어렵겠네요. 몇 부분만 인용하는 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저자의 다른 책이 번역되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 정도만 더 얹는 것으로 하고요(지금 찾아보니 이미 [아메리카나]가 나와 있었군요. 다음 책 주문할 때 서재에 들이는 것으로).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긍정적으로 사용되는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14쪽
(…)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에 얼마나 많은 함의가 깔려 있는가, 그것도 부정적인 함의가 깔려 있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는 남자를 싫어하고, 브래지어도 싫어하고, 아프리카 문화를 싫어하고, 늘 여자가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화장을 하지 않고, 면도도 하지 않고, 늘 화가 나 있고, 유머감각이 없고, 심지어 데오드란트도 안 쓴다는 거지요.
의사 선생님을 찾을 때, 간호사님을 찾을 때, 그 직업군의 성별까지 마음대로 예상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상과 다를 때, 저도 모르게 움찔하게 되는 것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교육의 결과이며 충분히 바꿀 수 있습니다.
16쪽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반복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목격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 만일 남자아이만 계속해서 반장이 되면, 결국 우리는 무의식적으로라도 반장은 남자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만일 남자들만 계속해서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을 목격하면, 차츰 우리는 남자만 사장이 되는 것을 “자연스럽다”고 여기게 됩니다.
왜 굳이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쓰느냐, 저자는 이렇게 답합니다. “한 사람의 구체적인 경험들을 침묵시키는 방편입니다.”라는 말에 주목합니다.
44쪽
어떤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쓰죠? 그냥 인권옹호자 같은 말로 표현하면 안 되나요?” 왜 안 되느냐 하면, 그것은 솔직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페미니즘은 전체적인 인권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인권이라는 막연한 표현을 쓰는 것은 젠더에 얽힌 구체적이고 특수한 문제를 부정하는 꼴입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여성들이 배제되어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하는 꼴입니다. 젠더 문제의 표적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니다. 이 문제가 그냥 인간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콕 집어서 여성에 관한 문제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니다. 세상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인간을 두 집단으로 나눈 뒤 그중 한 집단을 배제하고 억압해왔습니다. 그 문제에 관한 해법을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그 사실부터 인정해야 합니다.47쪽
한번은 내가 젠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웬 남자가 묻더군요. “당신은 왜 자신을 여성으로만 봅니까? 왜 그냥 인간으로 보지 않습니까?” 이런 질문은 한 사람의 구체적인 경험들을 침묵시키는 방편입니다.
더 잘해야 합니다. 지금 이대로 둘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51-52쪽
나는 페미니스트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남자든 여자든, 맞아, 오늘날의 젠더에는 문제가 있어, 우리는 그 문제를 바로잡아야 해, 우리는 더 잘해야 해, 하고 말하는 사람이라고요. 여자든 남자든, 우리는 모두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