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냐 추녀냐

요네하라 마리의 팬입니다. 정말 많은 것을 보고 읽고 듣고 말한 사람인데 본업은 통역이기까지 했으니까요. 외국어를 잘 하지 못하는 저로서는 통역과 번역이 가능하다는 사실(또 ‘진정한 통역, ‘진정한 번역’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지만 그런 이야기는 제 관심사가 아닙니다)이 신기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 책은 요네하라 마리가 쓴 수많은 책 중에서도 가장 본업에 가까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미녀냐 추녀냐’는 번역에 관한 오랜 논쟁인 ‘부정한 미녀인가 정숙한 추녀인가’를 줄인 것입니다. 아름답지만 원문에 충실하지 못한 번역을 택할 것인가, 못생겼지만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택할 것인가는 이야기입니다. 실은 이런 건 허구적인 문제 설정이라고 생각하는데, 더 깊이 이야기할 깜냥은 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쓰는 학술 용어는 일본에서 가져온 것이 많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society”를 “사회”로 옮긴 것 같이요. 일본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이렇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그렇죠.

35쪽
생활하면서 사용하는 구체적인 언어인 일상어에는 야마토 언어가 많다. 그리고 추상적인 개념이나 학문적인 언어에는 한어가 많다.

소위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요네하라 마리의 견해입니다. 저는 생각이 아주 약간 다릅니다. 사회적 인식 자체를 바꿀 시간을 조금이나마 벌어주는 역할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42쪽
표현을 금지해도 그 언어로 표현된 개념까지 금지할 수는 없다. 개념은 반드시 본질을 표현한다. ‘불구자’라는 표현에 멸시감을 가지고 사용하던 사람은 아무리 ‘신체장애자’니 ‘몸이 불편한 분’이라고 표현을 바꾸어도 전환되는 표현에 멸시감을 그대로 계승할 뿐이다.

모국어는 어떤 경우에도 큰 자산이 됩니다. 여기 다 인용하지는 않지만, 요네하라 마리는 여러 곳에서 모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146쪽
외국어를 듣고 모국어로 하는 편이 모국어를 듣고 외국어로 하는 것보다 수월하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한다. 분명히 어휘와 표현이 더 풍부하고 언어 조정 능력이 더 높은 언어(대개 모국어)로 표현을 하는 것이 더 정돈되고 듣기 편한 통번역이 된다.

요네하라 마리의 일본어에 대한 애정을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애정이 있어야 비판도 하는 것이라는 말에 따르면요. 왠지 일본어와 한국어가 유사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떨는지 모르겠습니다.

223쪽
일본어의 ‘비논리성’의 두 번째 요인은 ‘아주 가까운 거리’의 인간관계에 피해가 가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흑백을 분명하게 하는 것을 꺼려하고 인과관계를 밝히지 않고 최대한 애매하게 표현하여 논리성을 가능한 한 눈에 띄지 않게 숨기든지, 적어도 전면에 내놓지 않으려는 경향이 언어 습관 속에 뿌리 박혀 있기 때문이다.

280쪽
언어와 동시에 사람은 그 언어가 짊어진 문화를 좋고 싫음 없이 흡수해 버린다. 이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언어는 그 국민성의 반영이며 국민성의 일부다.

284쪽
일본어는 본래 외국어에 무절제할 정도로 개방되어 있는 부분이 있어서 일본어로 정착된 것인지 아닌지, 아무도 모른다. 외래어를 듣고 모르면 어쩐지 교양이 부족한 것 같아서 창피하다는 청자의 허영심도 작용하여 통역사의 일본식 영어라는 약기 그지없는 대응을 묵인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식 발음의 영어에 조사만 붙여서 연결한 문장이 대량 생산되는 실정이다.

저는 이 부분을 무척 좋아합니다. 요네하라 마리가 어렸을 때 받았던 문학 수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어떤 글의 요지를 스스로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72쪽
문학 수업은 다음 4가지의 특징이 있다.
첫째, 아동용으로 요약되거나 다시 씌어진 것이 아니라 문호들의 실제 작품을 다독한다. (…)
둘째, 고전의 명작으로 평가받는 시 작품이나 산문 에세이 중에서 주요한 부분은 암송한다. (…)
셋째, 초등학교 3년까지 일본에서 지낸 내 경험상, 국어 시간은 “그럼 아무개 읽어보세요”라는 선생님의 호명에 틀리지 않고 읽으면 그걸로 자리에 앉아서 끝나버렸는데, 소련 식 수업에서는 정확하게 전부 읽으면 방금 읽은 내용을 간추려서 이야기해야 했다. 한 단락이나 두 단락을 읽으면 그때마다 요지를 서술해야만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
넷째, 작문 수업은 주제를 결정하면 먼저 그 주제에 관한 명작을 수 편 선생님이 읽어준다. (…) 그 작품의 콘티를 쓰게 한다.

그 대단했다는 요네하라 마리도 실은 이런 말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모든 통역사는 발전도상의 통역사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그렇지 않을까요. 약간의 위안을 받습니다.

299쪽
“모든 통역사는 발전도상의 통역사다.” 도쿠나가 하루미 스승이 즐겨 사용하시는 말씀 중 하나다. 어려워 보이는 일에 겁을 먹고 의뢰를 거절하려고 하면 스승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며 반드시 다음과 같이 질타와 격려를 해주시곤 했다.
“완벽한 통역사라는 건 처녀 매춘부처럼 이율배반의 최고봉이니까 통역 기술의 완성이나 준비는 적당한 시점에서 손을 털고 현장에서 배우면서 성장하는 길을 택해야 합니다. 아직은 안 돼, 아직 더 해야 돼, 라고 하면서 완벽한 통역 기술을 습득하는 데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버린 다음, 비틀거리면서 지팡이 짚고 뽐내며 등장해서는 ‘그럼 통역을 해주겠소’라고 말해도 아무도 상대를 안 해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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