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디아 불랑제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합니다.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스승이었다는 이야기는 어디선가 듣고 알고 있었지만요. 하지만 책 말미의 수많은 헌사들. 나디아 불랑제가 대단한 스승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정도로 잘 알려져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부당하다 느끼지만, 그 이유는 속으로만 짐작해봅니다.
이 책은 나디아 불랑제의 인터뷰집입니다. 약간 편집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편저자는 나디아 불랑제의 말에는 손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저는 인터뷰 집을 많이 좋아합니다. 정제되지 않고 튀어나오는 그런 말들을 좋아하는 것이죠. 인터뷰이에게 인터뷰가 좋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제가 건전한 독자는 아니란 이야기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떠올렸던 것은 ‘장인’입니다. 아니면 이사야 벌린의 고슴도치와 여우의 일화에서의 고슴도치일 수도 있겠지요. 여우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고슴도치는 하나의 큰 것을 알고 있다는.
주의를 집중하기.
39쪽
그래서 저는 기본 토대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해야 했어요. 즉 듣기, 응시하기, 경청하기, 보기. 그리고 자기 자신을 존중하여, 교만하지 않고 존재에 중요성을 부여하기. (…) 저는 일부러 ‘듣기, 응시하기, 경청하기, 보기’라고 표현했어요. 왜냐하면 경청한다고 하면서 실은 아무것도 못 들을 수도 있으니까요. 본다고 하면서 아무것도 응시하지 못할 수도 있고, 또 응시한다고 하면서도 아무것도 못 볼 수도 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떤 일을 하면서도 지금 하는 그 일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 순간 그 사람은 망하는 거죠.47쪽
어머니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한 가지는 제대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거였어요.
많은 것을 기억하려 노력하기.
66쪽
악보를 읽거나 음악을 들을 때, 앞에 온 음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다음에 올 음들을 느끼지 못하면 당신은 아무 의미도 없는 고립된 부호들을 읽고 있는 셈이에요. 특히 음악이란 기억이라는 현상을 내포합니다.68쪽
전 모든 걸 다 기억하고 싶어요.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만 아니라면.70쪽
무엇을 던져버린다는 행위에는 뭔가 오만한 요소가 있습니다. 그건 내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경멸의 행위입니다.73쪽
많은 것들을 기억 속에 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자체로 훌륭한 벗들을 곁에 두는 셈이 되지요. 기억에 담은 것은 모두 우리를 풍부하게 해주고 우리 자신을 찾는 데 도움이 됩니다.
구체적으로 욕망하고 실행하기.
58쪽
설령 그러고 싶은 마음은 있었더라도 타고난 무심함과 게으름 탓에 그런 계획을 실현시키지 못한 것이라면, 그 욕망이 아주 강렬하지는 않았다는 얘기죠.
(…)
슈베르트는 “난 러시아어를 하고 싶어”같은 말을 안 하죠. 그런 말을 하는 대신 실제로 합니다. 우리는 하지는 않으면서 말만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없다는 거창한 변명을 앞세우지요. 하지만 슈베르트도, 바흐도, 포레도 시간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넉넉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61쪽
당신이 어렸을 때 저처럼 복음서에서 이 구절을 읽고 충격 받은 적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이 주어지리라.” 저는 발끈했어요. ‘뭐라고? 이 사람은 이미 많이 받았는데, 그에게 더 준다는 거야!’ 하지만 여기에 대단한 지혜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보니 마음속에 욕망도 없는 것이죠. 아무 일도 안 할 사람에게 많이 준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나디아 불랑제에게는 릴리 불랑제라는 뛰어난 동생이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릴리 불랑제는 24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습니다.
137쪽
저는 ‘어째서 대중들이 릴리가 음악사에서 차지할 만한 자리를 쾌히 인정해주지 않고 조금씩 망설이는 걸까?’ 이 점을 자문해봅니다. (…) 그녀는 어쨌든 역사상 중요한 최초의 여성 작곡가입니다.138쪽
릴리가 쓴 편지 일부를 출판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어요. 동생의 삶에는 한 점 비밀의 그림자도 없었지만, 만약 그 애의 편지를 책으로 낸다면 동생이 이렇게 말할 것 같았어요. “아니! 내가 언니에게 쓴 편지인데 그걸 아무한테나 보여주다니!” 제 생각이 어쩌면 틀렸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제가 이런 말을 할 입장은 아니죠. 동생은 제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 가장 친밀한 것, 가장 깊은 것을 구현하는 존재입니다. 이런 느낌에 부합하는 건 오로지 침묵뿐인 것 같습니다.
연주자에게 어느 정도의 재량이 허용된다고 봐야 할까요? 저는 나디아 불랑제의 말들에 동의합니다.
161쪽
저는 ‘연주한다’는 말보다 늘 ‘전달한다’는 말을 선호하죠. (…) 그런데 제 경우를 말하자면, 연주자가 우위를 차지하는 순간부터 연주는 잘못됩니다. 연주자는 승리하지만 곡은 망쳐지는 것이죠.162쪽
연주자가 곡을 자신 쪽으로 되가져오는 것은 어느 정도는 숙명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연주자는 오직 곡만을 생각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169쪽
연주할 때 절대 범해선 안 될 것 중 하나는, 빠르기를 이렇게 저렇게 변화시키는 일이에요. (…) 자유라는 건 변함없는 박자의 규칙성과 엄격성의 틀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 결국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
184쪽
몽생종 : 시대와 균열이 있다는 느낌은 전혀 안 드시나요?
불랑제 : ‘균열’이라는 말은 제가 좋아하지 않습니다. ‘변화’겠지요.
몽생종 : 엄밀히 기법적인 관점에서 볼 때, 예컨대 쇤베르크 같은 경우는 음악을 생각하는 방식에 있어 그 앞의 것과 급진적으로 다른, 균열의 요소를 도입했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불랑제 : 오십 년 후에도 그게 그렇게 큰 균열일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세계사에서 오십 년 세월은 일 분이나 마찬가지예요.186쪽
그렇지만 조상 없는 천재는 없지요. 종종 세대와 세대 사이에 결코 단절되지 않은 암묵적 연결을 발견하곤 해요. 그 연결로 말미암아 세대와 세대들이 수렴되지요.
마지막으로, 저는 이 말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144쪽
한 인간에 대해 아는 것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는 매우 큰 도움이 됩니다만, 예술가의 삶이란 다름 아닌 그의 작품이에요. 인간 스트라빈스키가 예술가 스트라빈스키에게 미치는 영향은 중요한 게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