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 투 마우스

빈곤에 대한 책은 많이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중에서도 굉장히 뛰어난 책입니다. 저자 린다 티라도는 미국 하층계급 여성 노동자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하층계급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하층계급이 자신이 처한 부조리한 상황을 글로써 설득력 있게 잘 알릴 수 있을까요? 불가능할 겁니다. 물론 저자는 자신이 그 경계에 서있다는 점을 스스로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이 이 책이 훌륭한 첫 번째 이유입니다.

잘 쓴 책일수록 덧붙이는 말이 무의미해집니다. 그래서 고민이 됩니다. 좋은 책에 안 좋은 글을 덧붙여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이 짤막한 소개가 책에 해가 되지 않기만을 바랍니다.

그는 책에서 쓸 용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빈곤과 가난, 돈이 없음. 가난할수록 기적의 척도가 낮아집니다.

29쪽
‘빈곤’이란, 25센트가 빌어먹을 기적을 의미하는 경우다. ‘가난’이란 1달러가 기적인 경우다. ‘돈이 없음’이란 5달러가 기적인 경우이다. ‘노동계급’은 돈은 없지만, 다 무너져가는 것은 아닌 장소에서 돈이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중간계급’은 장난감도 몇 개 가지고 있으며 산뜻한 곳에서 사는 이들을 말한다. 그런데 ‘산뜻한’이 ‘근사한’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가구를 대여하지 않고 직접 살 수 있고 고지서에 대해 걱정할지언정 노숙자가 될까봐 전전긍긍하지는 않는 정도를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자’란, 그보다 더 잘사는 모든 사람을 뜻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게을러서 그렇다, 낭비해서 그렇다는 사람들의 말에 대한 저자의 대응. 여러 곳에서 일을 하면? 근무시간을 늘리면?

39쪽
일이란 이런 식이다. 두 곳 이상의 일자리를 뛸 때마다 나는 스케줄이 겹쳐서 한 곳에서 버는 만큼을 다른 곳에서는 잃었다.

41쪽
반면 죽도록 일하고 노동시간을 늘려 달라 애걸하고 동전 한 푼도 헛되게 쓰지 않는데도 정기적으로 전기세를 낼 수 없다면. 그것은 영혼이 죽는 경험이다.

가난한 이들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손해일 것을 알면서도요. 어쩔 수 없이. 이것이 바람직한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65쪽
가난한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무급 인턴이다. 한 푼도 받지 않고 일하는 것이 내게는 그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내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제안을 여러 번 거절해야 했다.

저자는 가난한 노동자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저자가 다른 가난한 노동자에게 항상 우호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라 예상하면 안 됩니다. 가난은 사람을 예고 없이 후려치니까요.

106쪽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때때로는 미안하다. 나처럼 거지같은 하루를 보낸 누군가에게도 내 격한 반응을 미처 참지 못할 때가 있다. 기저귀를 사러 마트에 갔을 때였다. 대체 귀신에 씌었는지 나는 기저귀를 찾을 수가 없었다. 마트 안을 샅샅이 뒤졌는데도 찾지 못했다. 기진맥진해서 완전히 쓰러질 것만 같은 찰나, 그곳에서 일하는 가난한 여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정상적인 인간처럼 기저귀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 것이 나의 의도였다. 대신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당신네는 그 빌어먹을 기저귀를 대체 어디다 숨겨둔 거예요”였다. 그 말이 어떤 경로로 뇌에서 출발해 입에 도착한 건지 말해줄 수 없다. 때때로 그런 일은 그냥 일어나버린다.

복지가 과다하다는 말. 그들이 복지수당으로 놀고먹을 것이라는 말. 대책 없이 아이를 낳아 지원금을 과다 수령할 것이라는 말.

163쪽
가난한 사람이 생일에 그럴싸한 스테이크를 부정한 방법으로 먹게 될까봐 아주아주 겁을 내는 유권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감사를 표하고 싶다. 몇 달 동안 인스턴트 라면을 먹게 해줘서 고마워요.

171쪽
그런 멍청이 중 몇 명은 아이를 하나 더 낳음으로써 쉽게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멍청한 가난뱅이는 멍청한 부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그 수가 훨씬 적다고 나는 주장한다. ‘훨씬 적다’는 것은, 그런 짓을 하는 가난한 사람은 통계적으로 그다지 의미가 없을 정도로 그 수가 미미하다는 뜻이다. 증명할 수 있냐고? 없다. 하지만 그렇게 치면 공짜 점심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다리를 부러뜨리지는 않는다는 것도 증명할 수 없다.

이제 린다 티라도의 다음 말로 마무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마지막 말에 밑줄을 더 쳤습니다.

137쪽
수백만 명의 가난한 우리는 이렇게 사는 게 지긋지긋하다. 우리는 기다리고 견뎌왔다. 우리는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회복력이 강하다. 내가 궁금한 건 이거다. 가난한 사람들이 이렇게 산다는 것을 이 나라의 나머지 인간들은 알고 있는데도 그들은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살 수 있는 걸까?

10쪽
친절하고, 상냥해지자. 베풀고, 현명해지자.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자. 그것은 당신이 진정성을 절대 잃지 않으면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