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형법 문제

얼마 전 ‘주취감형’ 폐지를 위해 20만 명 넘게 청원을 하였다는 기사를 보았다. 아마 형법 제10조 제2항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실은 취해서 저지른 범죄라 하여 반드시 감형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제 정신으로는 저지를 수 없을 범죄를 저지르기 위하여, 일부러 만취하여 실제 그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에는 현행 형법 제10조 제3항으로도 규율이 가능하므로 위 청원에 아주 약간의 오해는 있어 보인다.

제10조 (심신장애자)
①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행위에는 전2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위 주취감형 폐지 이야기가 밀려나온 데에는 조00 사건이 큰 몫을 차지한 것 같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왜 이렇게 빨리 석방되는가. 주취감형 때문이 아닌가. 하지만 지금 조00의 행위에 대한 형량이 충분하였는지, 또는 주취감형(?)이 정당하였는지를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특별형법(일단 ‘행정형법’이라 불리는 것은 제외하고)을 이야기하고 싶다. 헌법에서 정하고 있는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아무리 잘못된 행위라 하더라도 성문의 법률로 그 행위를 처벌한다고 정하고 있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중심에는 “형법”이 있다. 형법에서 처벌할 행위 대다수를 규율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한국에는 형법 이외에도 행위자를 형사 제재하는 법률이 엄청나게 많다. 보통 이런 법들을 특별형법이라 하기도 하고 부수형법이라 하기도 하는 것 같은데, 아무리 뛰어난 법률전문가라 하더라도 특정 행위가 형사적으로 문제 될 수 있을 것인지를 모두 암기하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로 많다 정도만 이야기하면 되겠다.

왜 조00 사건에서 특별형법이 문제가 되나. 조00의 범죄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나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을 적용하여 기소할 수 있었을 만한 사건이었지만, 검사가 굳이 형법을 적용하여 기소하였기 때문에 다른 사건들에 비하여 낮은 형이 나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보통 특별형법의 형이 형법에 비해 훨씬 더 높다). “불고불리의 원칙”에 따라, 검사가 형이 가벼운 일반법(여기서는 형법)을 적용하여 기소하는 이상, 법원은 형이 무거운 특별법(여기서는 성폭법 등)을 적용해 처벌할 수는 없다. 그 반대는 가능하겠으나.

이 사건과 같이 일반법과 특별법이 동일한 구성요건을 가지고 있고 어느 범죄사실이 그 구성요건에 해당하는데 검사가 그 중 형이 보다 가벼운 일반법의 법조를 적용하여 그 죄명으로 기소하였으며, 그 일반법을 적용한 때의 형의 범위가 ‘징역 15년 이하’이고, 특별법을 적용한 때의 형의 범위가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으로서 차이가 나는 경우에는, 비록 그 공소사실에 변경이 없고 또한 그 적용법조의 구성요건이 완전히 동일하다 하더라도, 그러한 적용법조의 변경이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초래한다고 보아야 하며, 따라서 법원은 공소장변경 없이는 형이 더 무거운 특별법의 법조를 적용하여 특별법 위반의 죄로 처단할 수는 없다.
(출처 : 대법원 2007.12.27. 선고 2007도4749 판결 상습절도{인정된죄명: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절도)} [공2008상,176])

한 마디로 어떤 행위가 형법과 특별형법의 구성요건에 모두 해당한다면, 검사는 그 중 적용할 법을 마음대로 골라 기소할 수 있다. 이 경우 약간 과장하면 검사 마음대로 처단형의 범위를 정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특별형법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형법만큼이나 오래된 특별형법들이 있다. 이를테면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같은 경우 60년대에 최초로 만들어진 법이다. 여기다가 시대상황에 따라 가중처벌할 범죄를 누더기처럼 더덕더덕 붙여 왔다. 최소한 이런 법들은 청산이 필요하다. 형법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검사에게 저 정도의 재량을 주는 것은 바람직한가? 사법 불신만 더 높아질 뿐이다. 그리고 중형이란 것이 바람직하기만 한가?

일례로 아래 특가법의 변화를 본다. 먼저 개정 전, 개정 후 특가법 제9조 제1항 1호를 본다.  2015년까지만 해도 절취한 임산물의 원산지 가격이 1천만원 이상인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었다. 그런데 2016년이 되자, 1억원 이상, 3년 이상 25년 이하로 각 바뀌었다. 이 정도로 극단적인 변화라면, 개정 전 형량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볼 수가 없다.

특가법 제9조 제3항을 보자. 누군가 산림법 제73조 제3항을 위반했을 경우, 검사는 산림법을 그대로 적용하여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을 구형할 수도 있고, 특가법 제9조 제2항을 적용하여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구형할 수도 있었다. 개정 후 삭제되었다.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산림법)

제73조(벌칙)
① 산림에서 그 산물(조림된 묘목을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을 절취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제1항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③ 제1항의 죄를 범한 자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한 경우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개정 2009.6.9>
1. 채종림이나 시험림에서 그 산물을 절취하거나 수형목을 절취한 경우
2. 원뿌리를 채취한 경우
3. 장물(臟物)을 운반하기 위하여 차량이나 선박을 사용하거나 운반ㆍ조재(造材)의 설비를 한 경우
4. 입목이나 죽을 벌채하거나 산림의 산물을 굴취 또는 채취하는 권리를 행사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절취한 경우
5. 야간에 절취한 경우
6. 상습으로 제1항의 죄를 범한 경우
[전문개정 2007.12.21]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

개정 전
제9조(「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등 위반행위의 가중처벌)
①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73조제1항·제2항 및 제74조에 규정된 죄를 범한 사람은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가중처벌한다.
1. 임산물(林産物)의 원산지 가격이 1천만원 이상이거나 산림 훼손면적이 5만제곱미터 이상인 경우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2. 임산물의 원산지 가격이 100만원 이상 1천만원 미만이거나 산림 훼손면적이 5천제곱미터 이상 5만제곱미터 미만인 경우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②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71조, 제73조제3항 및 「산림보호법」 제53조제2항·제3항 및 제5항에 규정된 죄를 범한 사람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전문개정 2010.3.31.]

개정 후
제9조(「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등 위반행위의 가중처벌)
①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73조 및 제74조에 규정된 죄를 범한 사람은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가중처벌한다. <개정 2016.1.6.>
1. 임산물(林産物)의 원산지 가격이 1억원 이상이거나 산림 훼손면적이 5만제곱미터 이상인 경우에는 3년 이상 2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2. 임산물의 원산지 가격이 1천만원 이상 1억원 미만이거나 산림 훼손면적이 5천제곱미터 이상 5만제곱미터 미만인 경우에는 2년 이상 2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삭제 <2016.1.6.>
[전문개정 2010.3.31.]

헌법재판소는 최근 일반법과 같은 구성요건을 정하고 있으면서 형량만 높인 특별법들에 대한 위헌결정을 많이 내렸다. 이것은 하나의 신호이다. 이제 정리를 좀 하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아주 오래 전부터 나왔는데 아직도 그대로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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