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의 징계권과 ‘무죄추정원칙’

무죄추정원칙은 형사법의 대원칙이다. 헌법재판소는 무죄추정원칙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시하고 있다.

“우리 헌법 제27조 제4항은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하여 무죄추정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이라 함은, 아직 공소제기가 없는 피의자는 물론 공소가 제기된 피고인이라도 유죄의 확정판결이 있기까지는 원칙적으로 죄가 없는 자에 준하여 취급하여야 하고 불이익을 입혀서는 안되며 가사 그 불이익을 입힌다 하여도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헌재 1990. 11. 19. 90헌가48, 판례집 2, 393, 402; 헌재 1997. 5. 9. 96헌가17, 판례집 9-1, 509, 517; 헌재 2009. 6. 25. 2007헌바25, 판례집 21-1하, 784, 798). 여기서 무죄추정의 원칙상 금지되는 ‘불이익’이란 ‘범죄사실의 인정 또는 유죄를 전제로 그에 대하여 법률적·사실적 측면에서 유형·무형의 차별취급을 가하는 유죄인정의 효과로서의 불이익’을 뜻하고, 이는 비단 형사절차 내에서의 불이익뿐만 아니라 기타 일반 법생활 영역에서의 기본권 제한과 같은 경우에도 적용된다( 헌재 2005. 5. 26. 2002헌마699등, 판례집 17-1, 734, 744; 헌재 2006. 5. 25. 2004헌바12, 판례집 18-1하, 58, 68 등 참조).”

헌법재판소 2010. 9. 2. 선고 2010헌마418 전원재판부 [지방자치법제111조제1항제3호위헌확인]

무죄추정원칙에 관해 대한민국헌법 제27조 제4항은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피고인”에 국한되지는 않는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무죄추정원칙이 형사절차를 넘어 일반 법생활 영역에서도 적용된다고 하여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그러나 눈여겨볼 부분은 “불이익을 입힌다 하더라도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는 부분이다. 무죄추정원칙은 “모든” 불이익을 금하는 게 아니다. 만약 모든 불이익을 금한다면 인신구속 수사는 어떠한 경우에도 허용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단체 내부의 징계절차와 무죄추정원칙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예를 들어 어떤 단체의 구성원이 범죄를 구성하는 행위를 했거나 하고 있고, 해당 행위는 동시에 단체 내부 규정에 따른 징계 대상이 된다고 가정한다. 위 구성원에 대한 수사가 이루어지고 있거나 기소되었다고 했을 때, 즉 유죄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해당 단체는 단체 내부 규정에 따라 징계를 내릴 수 있을까? 혹시 징계 자체가 무죄추정원칙에 반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순전히 “기소되었음”만을 이유로 한 징계는 무죄추정원칙에 반한다고 보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태도이다.

“나아가 입법론상 변호사가 형사사건으로 공소제기된 경우에 품위손상 등을 이유로 당해 변호사에게 자기에게 유리한 사실이나 필요한 증거를 제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대석적 절차보장을 하는 한편 업무정지의 목적도 고려하여 가면서 같은 조치에 이를 수 있는 입법은 변론으로 하고, 변호사법 제15조에서 변호사에 대해 형사사건으로 공소가 제기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업무정지명령을 발하게 한 것은 아직 유무죄가 가려지지 아니한 범죄의 혐의사실뿐 확증없는 상태에서 유죄로 추정하는 것이 되며 이를 전제로 한 불이익한 처분이라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 1990. 11. 19. 선고 90헌가48 전원재판부〔위헌〕 [변호사법제15조에대한위헌심판]

그러나 공소제기의 기초가 된 구체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단체 내부 규정에 따른 심사를 한 후 징계를 하는 것은 가능하고 무죄추정원칙에 반하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가 정당한 사유로 징계를 요청했고, 가해자에 대한 징계절차를 진행하던 단체가 갑자기 ‘무죄추정원칙에 따라 재판 결과를 보고 진행하겠다’며 절차 진행을 미루고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판결이 확정되려면 경우에 따라 몇 년이 걸리기도 하는데 그때까지 두고만 보고 있겠다는 이야기일까? 만약 해당 구성원의 범죄사실(친고죄라 가정)은 인정됐지만, 피해자가 고소기간을 도과하는 바람에 기소할 수 없었다면 그 가해자에 대해서는 무죄추정원칙에 따라 어떠한 징계도 내릴 수 없다는 말일까?

단체 내부 규정에 따른 징계와 형사사법절차에 따른 형사처분은 완전히 별개의 절차다. 한 단체의 구성원이 누군가를 위법하게 가해했거나 가해하고 있다면, 해당 단체는 징계권을 행사해서 해당 가해행위를 멈추도록 노력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단체의 책임이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