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

대법원 판결문에 등장한 ‘성인지 감수성’이란 표현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많았습니다. 다소 길지만 한 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양성평등기본법 제5조 제1항 참조).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성희롱 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정적 반응이나 여론, 불이익한 처우 또는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 등에 노출되는 이른바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여야 한다. 피해자는 이러한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으로 인하여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피해사실을 즉시 신고하지 못하다가 다른 피해자 등 제3자가 문제를 제기하거나 신고를 권유한 것을 계기로 비로소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으며, 피해사실을 신고한 후에도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그에 관한 진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와 같은 성희롱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
—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두74702 판결—

‘성인지 감수성’이란 표현은 결국 수사·재판 과정에 큰 영향을 끼치는 ‘성적 고정관념’ 혹은 ‘피해자다움’을 명시적으로 문제 삼은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얼마 전 ⌈판결과 정의⌋를 낸 김영란 전 대법관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지배적인 성적 고정관념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을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라면 그때의 감수성은 피해자 감수성일 뿐 여성인 피해자의 감성을 가리키는 말은 아닐 것이다.
—⌈판결과 정의⌋, 50쪽—

이 책은 이러한 ‘피해자다움’이 가져오는 폐해를 고발합니다. 책을 넘기면 피해자 “마리”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경찰 조사를 마치고 나온 마리는, 마리를 지원하는 기관의 간사에게 인도됩니다. 기관의 간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3쪽
그래서 말인데. 너 강간당한 게 맞니?

사람들이 ‘성범죄 피해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습니다. 피해자의 언동이 이런 이미지에서 벗어나게 되면 사람들은 피해자부터 의심하곤 합니다. 피해자는 수사기관에, 주변 사람들에게 반복해서 본인의 피해를 증명해야 하고 때로는 실패합니다.

14쪽
일주일 전, 녹갈색 눈동자에 곱슬머리에 치아 교정기를 낀 18세 소녀 마리는 경찰에 강간 신고를 했다. (…) 이후 일주일 동안 마리는 경찰에게 이 이야기를 최소 다섯 번 반복했다. (…) 하지만 마리가 진술할 때마다 말이 조금씩 바뀌기도 했다. (…) 경찰이 마리를 불러 주변 사람들의 의심을 전달하니 그녀는 흔들렸고, 무너졌고, 결국 모두 지어낸 이야기라고 자백했다.

‘피해자답다’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성범죄 피해자의 반응은 정말로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성범죄 피해자는 경찰에 반드시 신고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 성범죄의 경우 신고율이 10% 정도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습니다. 발생한 모든 성범죄가 신고되는 것은 아니란 것입니다. 이유는 다양합니다. 수사 과정에서 그 기억을 반복적으로 떠올리기 싫을 수 있습니다. 없었던 일처럼 하고 싶을 수 있습니다. 과거 우호적이지 않았던 수사 관행을 떠올리며 신고를 꺼릴 수도 있습니다. 2차 가해가 예상되어 신고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한참 동안 고민만 하다 뒤늦게 신고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의 늦은 신고는 수사기관의 의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어째서 피해를 보자마자 신고하지 않았냐는 것이죠. 성범죄 신고율이 매우 낮다는 사실은 충분히 고려되지 않습니다.

피해자는 당시 상황에 비추어 봤을 때 자신의 안전을 좀 더 보장할 수 있는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외견상으로 봤을 때, 또는 일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이미지에 비추어 봤을 때 ‘피해자답지’ 않은 행동일 수도 있습니다.

311쪽
예를 들어 강간이 지속된 사건으로, 이 여성들은 거의 서너 시간 동안이나 학대를 견뎠다. “전형적인 배심원이라면 앉아서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이상하네. 여자들이 비명을 안 질렀잖아. 왜 소리를 지르지 않았나요? 왜 몸싸움을 해보지 않았나요? 잘하면 빠져나올 수 있었을 텐데요.” 또한 오리어리가 각 피해자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었다는 점도 염려되었다. 배심원은 이렇게 의심할 수도 있다. 여자가 아는 남자였던 건 아닐까? 그런 종류의 의문은 많은 강간 수사를 방해하는 장벽이 된다.

사람들은 범죄에 대한 기억이 전자기기에 기록된 메모처럼 분명하게 남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억은 불분명한 경우가 많습니다.

72~73쪽
세라의 세계에 일어난 균열을 보고 헨더샷은 놀라지 않았다. 헨더샷은 트라우마가 남을 수밖에 없는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후 기억이 왜곡되는 사람들을 수없이 목격했다. 많은 이들이 사건을 시간 순으로 기억하지 못한다. 트라우마는 두뇌에 손상을 입힌다. (…) 강간은 특수한 케이스다. 강간이란 경험, 무력함의 느낌은 마치 수사관들을 방해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여러 측면에서 기억을 손상시킨다. 끔찍한 폭력의 실재를 견디기 위해 많은 여성들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에서 눈을 돌려버리고, 가해자에게서도 눈을 돌려버린다. 스탠드 불빛만 노려보거나 벽에 걸린 그림만 보고 있기도 한다. 아니면 눈을 감아버린다. 이는 곧 여성들이 강간범을 제대로 묘사하지 못할 수 있고, 범인이 입은 옷, 방, 시간, 주변 환경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사람의 내면에 별다른 근거 없이 세워져 있는 ‘피해자다움’의 기준은 수사를 방해하고 기소를 방해하며 결과적으로 범죄자의 정당한 처벌을 어렵게 만듭니다. 이런 편견은 ‘전문가’라 하더라도 쉽게 피해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법원이 ‘성인지 감수성’이란 표현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347쪽
형사들은 마리 진술의 사소한 모순과 페기의 의심에 너무 많은 무게를 실었다. 의심이 한번 싹튼 후에는 마리를 면담하기보다는 취조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마리가 자백하자마자 “서둘러 허위 신고죄로 기소하고” 사건을 종결해버렸다. 마리가 자백을 취소하려고 했을 때 리트간 형사는 협박의 용어를 사용했다.

348쪽
린타는 14페이지의 감사 보고서에 이렇게 썼다.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마리의 신뢰 문제가 수사의 초점이 되었으며 심각한 중범죄가 일어났음을 가리키는 강력한 증거들은 완전히 무시되었다.” 린타는 첫날 한 시간밖에 수면을 취하지 못한 마리가 강간당한 일에 대해 몇 번이나 반복해서 진술했는지 되짚는다. (…) “경찰은 피해자에게 같은 이야기를 다섯 번이나 하라고 요구했다.” 이런 여러 개의 진술을 손에 쥐고 메이슨은 그 진술의 “사소한 차이”가 정신적 외상을 입은 피해자에게 흔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중대한 불일치로 만들었다.

다루는 주제를 떠나, 만듦새만 따지더라도 이 책은 잘 쓴 논픽션입니다. 사건 해결을 주도하는 여형사들의 활약도 대단합니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의 원전이 바로 이 책입니다. 이 책 또는 드라마를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피해자다움’ ‘성인지 감수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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