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과 글쓰기

좀 지난 일이지만 PC방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입은 피해를 자세히 묘사한 글을 읽었다. 소위 전문직들은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고 무엇을 이야기할 수 없는가? 이걸 고민하지 않고서 함부로 글을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먼저 변호사법을 보면 다음과 같은 규정이 있다.

제26조(비밀유지의무 등)
변호사 또는 변호사이었던 자는 그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애매하다. 대체 무엇이 비밀일까? 어떤 것은 비밀이라 볼 수 있고 어떤 것은 비밀이라 볼 수 없을까? 이런 이야기는 해도 되는 것일까, 안 되는 것일까? 하지만 이런 질문의 속내는 그저 의뢰인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풀고 싶다, 소위 “썰을 풀고 싶은데 법에 걸릴까 두렵다”는 것이다. 나도 하는 일이 하는 일이니만큼 이런저런 기막힌 경우를 많이 접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내 이야기가 아니고, 내가 변호사가 아니었다면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다. 어떤 경우에도 ‘의뢰인 보호’라는 목적보다 내가 ‘말하고 싶은 욕심’, ‘글로 쓰고 싶은 욕심’ 같은 것이 앞세워져야 할 경우는 없었다. 의료법에도 당연히 비슷한 규정이 있다.

제19조(정보 누설 금지)
①의료인이나 의료기관 종사자는 이 법이나 다른 법령에 특별히 규정된 경우 외에는 의료ㆍ조산 또는 간호업무나 제17조에 따른 진단서ㆍ검안서ㆍ증명서 작성ㆍ교부 업무, 제18조에 따른 처방전 작성ㆍ교부 업무, 제21조에 따른 진료기록 열람ㆍ사본 교부 업무, 제22조제2항에 따른 진료기록부등 보존 업무 및 제23조에 따른 전자의무기록 작성ㆍ보관ㆍ관리 업무를 하면서 알게 된 다른 사람의 정보를 누설하거나 발표하지 못한다. <개정 2016. 5. 29.>
② 제58조제2항에 따라 의료기관 인증에 관한 업무에 종사하는 자 또는 종사하였던 자는 그 업무를 하면서 알게 된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거나 부당한 목적으로 사용하여서는 아니 된다.

이런 규정의 목적은 단순하다. 의뢰인에 관한 이야기를 남에게 풀지 말라는 것이고 이것이 원칙이다. 의료법 규정이 모호해서 문제라는 말을 보는데 원칙을 따르지 않아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대체로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전문직은 그저 전문직이기 때문에 의뢰인에 대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내 것이 아니다. 전문직의 글쓰기가 늘어난 요즘, 의뢰인들의 이야기가 글쓰기의 재료로 활용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의뢰인의 허락을 받았으리라 짐작을 해보지만 그런 부분을 언급하지 않는 책도 있었다. 하지만 꼭 해야 하는 말인가? 혹시 말하고 싶은 욕심(공명심이라 해도 좋겠다)이 앞서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고민해야 한다. 의뢰인의 이야기를 흘리고 다니는 전문직을 누가 신뢰할 수 있을 것인지도.

근황

externalFile제 근황이 궁금하실 분이 계실까 모르겠습니다. 클래식 기타 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기타를 잡으니 즐겁네요. 연습하고 있는 곡은 피아졸라의 Invierno Porteño입니다. 언제쯤 곡답게 들릴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이 곡입니다.

파업에 관한 오해들

파업에 관한 오해가 있습니다.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좋은 일 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들 월급 올려달라고 시위하는 건데 뭐가 좋다고 받아주느냐는 이야기죠. 여기서 “좋은 일”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들 어려운데 자기 밥그릇 투쟁만 하지 말고 남을 도우라는 이야기 정도로 해석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툭하면 파업하니 파업이 너무 쉽지 않으냐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먼저 “좋은 일”도 하면서 위법하지 않은 파업이 가능할까요? 이것은 파업의 ‘목적’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일단 파업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쟁의행위에 속합니다. 쟁의행위는 노동관계 당사자가 그 주장을 관철할 목적으로 행하는 행위와 이에 대항하는 행위로서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계속 읽기

전과와 전과기록의 삭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보통 전과가 남는다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전과’가 법률로 정하고 있는 것과는 약간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정확히 살펴보려면 “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을 찾아보아야 하는데, 넓은 의미에서 전과라고 볼 수 있을 만한 것들을 모아보면 아래 표와 같습니다.

수형인명부(자격정지 이상) 전과기록
수형인명표(자격정지 이상)
수사자료표 범죄경력자료(벌금 이상)
수사경력자료 (법률상 전과기록 아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수형인명부나 수형인명표의 경우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삭제됩니다. 수사경력자료는 엄밀히 말하면 전과기록은 아니지만, 불기소처분 등에 대한 정보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과기록과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수사경력자료에 기재된 사항 중 일부는 삭제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범죄경력자료는 삭제되지 않고 보관됩니다. 다만 조회가 제한될 뿐입니다. 계속 읽기

정당방위, 과잉방위에 관한 의문

얼마 전 읽은 기사를 읽고 몇 가지 의문점을 풀어본다.

형법상 정당방위에 관한 규정은 다음과 같다. 1항은 정당방위, 2항과 3항은 과잉방위에 관한 것이다.

제21조(정당방위) ①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에는 정황에 의하여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
③전항의 경우에 그 행위가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하에서 공포, 경악, 흥분 또는 당황으로 인한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한편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에는 특별규정도 있다.

제8조(정당방위 등) ① 이 법에 규정된 죄를 범한 사람이 흉기나 그 밖의 위험한 물건 등으로 사람에게 위해(危害)를 가하거나 가하려 할 때 이를 예방하거나 방위(防衛)하기 위하여 한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 제1항의 경우에 방위 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에는 그 형을 감경한다.
③ 제2항의 경우에 그 행위가 야간이나 그 밖의 불안한 상태에서 공포·경악·흥분 또는 당황으로 인한 행위인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전문개정 2014.12.30.]

먼저 정당방위의 “사회윤리적 제한”이라는 것에 관한 의문이 있다. 사회윤리적 제한에 관한 논의를 대강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계속 읽기

고소 사건과 인지 사건의 차이

살면서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 경찰을 부를 일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112에 신고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경찰이 출동하면 따라가서 진술하기도 합니다. 보통 이 정도 조치로도 충분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형사소송법에서는 모든 범죄피해자를 동일하게 대우하지는 않습니다. “고소”를 이야기하려는 것입니다.

수사가 개시되는 데에는 수사의 단서가 필요합니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여기서는 고소와 인지만 다루려고 합니다. 먼저 고소는, 범죄의 피해자(또는 피해자와 일정한 관계에 있는 형사소송법상 고소권자)가 수사기관에 범죄사실을 신고하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구하는 의사표시를 말합니다. 다음으로 인지라는 것은, 고소나 고발 등을 제외한 신고, 진정 등을 통해 범죄가 발생했음을 수사기관이 알아차리고 스스로 수사를 진행하는 것입니다. 고소장을 제출하지 않은 사건의 경우 대체로 인지 사건으로 처리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차피 수사가 진행되는 건 똑같은데 인지 사건이든 고소 사건이든 대체 무슨 차이가 있겠냐는 생각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형사소송법상 고소인은 상당한 범위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되어 있으나, 단순한 범죄피해자에게는 그러한 권리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고소장을 제출하면 범죄피해자는 “고소인”이 되고, 이러한 고소인은 다소 특별한 대우를 받습니다.

예를 들어, 고소 사건은 3월 안에 사건을 처리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물론 위 처리시한은 훈시규정으로, 수사기관이 반드시 이에 구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인지 사건에는 이러한 제한이 없습니다. 고소 사건은 사건이 어떻게 종결되었는지 고소인에게 서면으로 통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인지 사건의 범죄피해자에게는 별도의 신청이 없는 한 서면으로 통지하지 않기 때문에 불기소 처분으로 사건이 종결되었음에도 아무 연락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물론 최근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만들어진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 및 「경찰수사규칙」에 따라 고소인이 아닌 단순 범죄 피해자의 경우에게도 수사 진행상황이나 수사 결과 등을 통지하도록 규정되어 있어 통지 관련된 부분의 불합리함은 어느 정도 개선되었다고 보이나, 이것은 아직 「형사소송법」에 근거한 것은 아니므로 박탈할 수 없는 확실한 피해자의 권리로 자리잡혔다고 보기에는 다소 이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이유로든 검사가 범죄피해자 관점에서 억울한 “불기소 처분”(경찰의 “불송치 결정”과는 다르며, 불송치 결정은 “이의신청(형사소송법 제245의 7)”에 의하여 다투어야 합니다)을 내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고소인과 인지 사건의 범죄피해자가 각자 취할 수 있는 수단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고소인은 검찰에 항고하여, 해당 불기소 처분에 대해 한 번 다퉈볼 수 있습니다. 항고도 기각되었을 때에는, 재정신청 제도를 이용하여 한 번 더 다퉈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지 사건의 범죄피해자는 항고 제도를 이용할 수 없고, 재정신청 제도 역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해당 불기소 처분이 범죄피해자의 평등권, 재판절차진술권 등을 침해했음을 이유로 곧바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해보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부수적인 권리 부분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고소인의 경우 수사기록에 대한 접근권이 약간 더 넓게 보장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 피해자의 경우, 수사기록에 대한 접근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형사사법포털을 이용하여 사건진행상황을 살펴볼 때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당연히 고소인이 훨씬 더 이용하기 수월합니다.

그래서 범죄 피해를 입었을 때엔 무조건 고소를 하라는 이야기냐,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다만 고소를 했을 때와 고소하지 않고 신고만 하는 것에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계셔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핵심적인 부분은 “불기소 처분에 대한 불복” 방법이겠습니다.

불기소 처분에
대한 불복
처분결과 통지 사건 처리 기간 제한

고소인

항고, 재정신청

서면으로 통지

3개월 안에
처리함이 원칙

인지 사건의
범죄피해자
헌법소원 별도로 신청해야
통지받을 수 있음
(최근 관련 법령 개정으로 개선된 부분 있으나 아직 형사소송법상 권리는 아님)

없음


• 2022. 2. 표현을 다소 다듬고 법령 개정에 따른 몇몇 부분을 추가하였습니다.

인지사건으로 수사 중인 사건에 고소장을 제출할 경우 이중 접수라는 이유로 반려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관련 법령 개정으로 인지사건의 범죄 피해자에 대한 권리 보장이 상당히 개선되었으나, 불기소 처분에 대한 불복 수단은 여전히 고소인과는 다릅니다. 이와 관련해, 2018년 경찰청에서 피해자 항고권 등 보장을 위해 인지사건 처리 중 고소장이 제출될 경우 별도 접수 후 기존 사건과 병합하여 다루도록 조치한 바 있다는 점, 최근 국민권익위 경찰옴부즈만에서 범죄 신고 후 고소하였을 때 고소사건으로 처리하여 불복 구제수단을 보장하라고 권고한 사실이 있다는 점, 국민권익위에서 유사한 내용의 고충민원을 동일한 방식으로 시정권고 하고 있다는 점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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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절차의 대략

이혼을 하기로 결심했다면 가장 먼저 아래 사항들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1. 상대방과 협의가 가능한 상태인지
2. 미성년 자녀가 있는지
3. 재산 관계는 어떠한지

상대방과 서로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일 때에는 협의이혼 절차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일 때에는 재판상 이혼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물론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경우에도 실무상으로는 재판상 이혼 절차를 밟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미성년 자녀의 유무입니다. 미성년 자녀가 있을 경우에는 누가 자녀를 양육할 것인지, 자녀의 친권자는 누구로 지정할 것인지, 양육비는 어떤 수준으로 정할 것인지, 자녀에 대한 면접교섭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부분을 정해야 합니다. 물론 자녀가 성인이라거나 자녀가 없을 때는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또 중요한 것은 재산 문제입니다. 재산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재산분할, 하나는 위자료입니다. 재산분할 대상이 되는 재산은 통상 혼인 성립 후 부부 공동의 노력으로 획득한 재산 중 해당 재산의 소유자가 불명한 것입니다. 위자료의 경우 부부 중 일방이 혼인 관계 파탄에 원인을 제공했을 때 인정되는 것으로, 피해를 본 일방 당사자를 정신적으로 위로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래에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설명은 미성년 자녀가 있고, 재산분할 할 재산이 있다는 전제의 것입니다.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