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와 양형

형량이 들쑥날쑥하다는 불만을 많이 봅니다. 외견상 비슷한 사건임에도 어떤 사건은 실형을, 어떤 사건은 집행유예를 선고한다는 것이죠. 이런 불만들이 잘못되었다고 하기는 좀 어려운 것이, 그러한 경향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법원에서도 그러한 문제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추세에 있습니다. 그리고 살인 관련 범죄들을 최악의 범죄로 보고 있는 이상, 현실적으로는 살인을 기준으로 형이 정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말씀드려야겠죠. 이렇게 중언부언한 이유는, 판사 역시 대체로 일반인의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회통념에서 아주 벗어나는 형을 함부로 선고하지는 않는다는 걸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형사사건에서 “합의”는 아주 강력한 양형인자입니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관대한 형이 선고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면, 일단 기사에 “합의”란 단어가 있는지 찾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합의”라는 것은 쉽게 말하자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돈을 주고, 피해자로부터 ‘원만히 합의되었으므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받아내는 것입니다. 물론 형을 깎기 위한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피해자에게 시간이 충분하고, 가해자의 자력도 충분하다면 합의를 권하지 않는 편입니다. 처벌은 처벌대로 받도록 하고(괘씸하잖아요?), 손해배상 청구는 또 따로 하면 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소송은 오래 걸립니다. 짧아도 반 년, 길면 몇 년입니다. 게다가 승소를 하더라도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해자에게 자력(재산)이 없다면 강제집행이 되질 않습니다. 가해자에게 재산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요. 그래서 판결문은 그냥 종잇조각에 불과하다고 불만을 표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합의를 고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피해자는 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데, 당장 치료비 등 목돈이 필요한 경우가 그렇죠. 실은 많은 사건이 그렇습니다.

다시 말하는 것인데, 합의는 아주 강력한 양형인자입니다. 왜일까요? 현실적으로 가해자들이 배째라고 나오는 걸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최대한 빠르게 피해를 보전시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합의와 상관없이 형량이 정해진다면, 어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돈을 주고 합의를 보려고 할까요? 그냥 형은 형대로 살고, 피해자에게 돈도 주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겠죠. 이런 상황이 피해자에게 이득이 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법원에서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합의가 잘 되었다면, 형을 깎아 줍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피해자 입장에서 가장 좋은 건 국가차원에서 피해자를 미리 금전적으로 지원하고, 그 금액을 국가가 가해자에게 다시 청구하는 것이겠죠. 피해자의 개입 없이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비슷한 일을 하는 범죄피해자지원센터 등의 역할이 제한적인 걸 보면요.

지금까지 쓴 걸 읽어보니 다소 혼란스럽네요. 결론은 이런 것입니다. 합의는 특별양형인자로 양형에 큰 영향을 미친다, 기자들이 기사를 선정적으로 쓰는 경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