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잘 쓰는 법

반갑게도, 일본의 이와나미 문고가 번역되어 나오고 있습니다. 이 책도 그 중 한 권인데요. 솔직히 말하면 일본의 문고문화가 무척 부럽습니다. 이런 생각 하는 사람 저 뿐만은 아니리라 생각하고요.

이 책은 “논문 잘 쓰는 법”이라고 되어 있으나 실은 “글을 잘 쓰는 법”이라 읽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시중에 많이 풀려 있는 글쓰기 책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런 책들이 글을 잘 쓰기 위한 방법들을 풀어낸다면, 이 책은 글을 쓰는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책이 많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주어가 명료하다는 것, 긍정과 부정이 확실하다는 것, 그리고 문장을 뱉은 본인의 책임. 인상적입니다.

45쪽
주어가 명료하다는 것과, 긍정과 부정이 명료하다는 것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주어가 확실한, 혹은 긍정과 부정이 확실한 문장을 쓴다는 것은 쓰는 본인이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57쪽
두 가지 사실 사이의 관계를 충분히 연구하고 인식해야 한다. 연구나 인식이 있어야 비로소 우리들은 ‘만’으로부터 ‘에도’나 ‘이기 때문에’로 나아갈 수 있다. 글이란 인식이다. 행위다.

75쪽
대화와 달리 글은 사교적이지 않다. 사교가 아니라 인식이다. 어떻게든 받아들일 수 있는 애매한 표현은 피해야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주어가 명확한 것, 긍정인지 부정인지가 확실한 것이 중요하다.

단어 사용에 대한 이런 부분도 좋았고요.

50쪽
‘미소 짓게 만드는’, ‘근성’ 같은 유행어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세간에서 환영받는 단어(그러한 것들은 센스 있고 멋있고 스마트하게 보인다)는 경계해야 한다. 그렇다고 세간에서 통용되기 어려운 고어나 신조어가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반대로 좀 더 평범하고 요소적인 단어를 날카롭게 사용하자는 의미다. 하나하나의 단어를 반짝거리게 만들거나 그런 단어들로 깜짝 놀라게 하면 안 된다.

89쪽
누구나 좋아하는 단어를 사용하는 편이 좋다. 아름다운 단어를 택하는 편이 좋다. 그러나 우리들은 시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부분은 다소 길게 인용하겠습니다. 투박하게 요약하자면 공부는 정면대결이라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73-74쪽
비판에 대해 떠오르는 것은 사회학 건설자인 프랑스의 오귀스트 콩트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나는 대학 졸업논문에서 오귀스트 콩트의 학설을 비판적으로 다뤘다. 그러나 훗날 스스로가 그에게 가한 비판이라는 것을 다시금 읽어보니 아무래도 비판이라기보다는 겁쟁이가 뒤에 숨어 허세를 부리듯 상대를 비난하는 형국이다. 오귀스트 콩트의 옆에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채 멀리서 제멋대로 지껄여대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러면 안 되지 싶어 생각을 고쳐먹고 이번에는 그의 의도나 학설의 세부로 들어가 보자 한심스럽게도 나 자신이 그의 사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들어가 버린다. 아무리 노력해도 거기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열심히 비판을 가할 작정으로 있어도 내가 쓴 글들은 그의 학설 소개가 되어버리고 만다. 비판은 어려운 법이다. 그러나 진정한 비판이란 한번쯤은 스스로가 그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 당장이라도 빠져버릴 듯 악전고투하고 거기서부터 가까스로 몸을 빼낸 경우에 비로소 성립되는 것이리라. 비겁하게 뒤에서 몰래 하는 비판으로는 문장 공부는 되지 않는다. 내용 공부도 되지 않는다.

113쪽
진정으로 깊게 안으로 들어가면 반드시 대립되는 것들이 나타나게 된다. 깊게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결국 충분히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다. 아주 상세히 조사하며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던 작업도 다시금 반복해본다.

저 역시 ‘나는 원래 그렇다’ 같이, 결국 ‘나는 내 멋대로 살 테니까 간섭하지 마라’로 귀결되는 태도를 무척 싫어합니다. 다른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서 예의를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겠죠.

105쪽
일본처럼 ‘여하튼 저는 야인이니까요……’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거나 그것을 수용하는 태도가 고정되어 있는 예도 드물 것이다. ‘야인’이라고 자칭하는 인간의 대부분은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어져 온 예의를 무시하고 이런 예의가 허락하지 않을 요구를 들고 나오는 자다. 예의도 무시당해도 괜찮을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예의를 무시할 수 있는 특권은 강하고 격한 애정만이 가지고 있다.

저자는 다시 반복합니다. 요즘처럼 말과 글이 가벼운 때에 적절한 조언이라는 생각입니다.

159쪽
우리들은 자신이 쓰는 단어에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가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를 항상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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