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에 관한 오해들

파업에 관한 오해가 있습니다.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좋은 일 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들 월급 올려달라고 시위하는 건데 뭐가 좋다고 받아주느냐는 이야기죠. 여기서 “좋은 일”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들 어려운데 자기 밥그릇 투쟁만 하지 말고 남을 도우라는 이야기 정도로 해석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툭하면 파업하니 파업이 너무 쉽지 않으냐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먼저 “좋은 일”도 하면서 위법하지 않은 파업이 가능할까요? 이것은 파업의 ‘목적’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일단 파업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쟁의행위에 속합니다. 쟁의행위는 노동관계 당사자가 그 주장을 관철할 목적으로 행하는 행위와 이에 대항하는 행위로서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불법 파업’이란 말은 많이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위법한 파업은 크게 두 가지 문제를 만들어 냅니다. 형사적으로는 “업무방해”에 해당하여 처벌받을 수 있고, 민사적으로는 “손해배상청구”를 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위법하지 않은 파업이라면 아래의 면책 규정에 의하여 면책됩니다. 물론 이것을 ‘면책’이라 보아서는 안 된다(헌법에서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죠)는 논의도 있지만, 이 글에서는 논의를 최대한 단순화하려고 합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3조(손해배상 청구의 제한)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제4조(정당행위) 형법 제20조의 규정은 노동조합이 단체교섭·쟁의행위 기타의 행위로서 제1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한 정당한 행위에 대하여 적용된다. 다만,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이나 파괴행위는 정당한 행위로 해석되어서는 아니된다.

문제는 간단해 보입니다. “폭력”이나 “파괴행위”를 피해 정당한 행위를 하면 되는 것입니다. 정당한 쟁의행위라면 형사적으로도 민사적으로도 문제 삼을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정당행위의 ‘정당성’이라는 것은 어디에 규정되어 있을까요? 사실 노조법은 ‘정당성’의 판단기준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법원의 판단에 맡겨져 있는 것입니다. 아래는 대법원의 ‘정당성’ 판단기준입니다. 좀 길다 싶으시면 넘어가셔도 됩니다.

“근로자의 쟁의행의가 정당성을 갖추기 위하여는 그 주체가 단체교섭이나 단체협약을 체결할 능력이 있는 노동조합이어야 하고, 그 목적이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한 노사간의 자치적 교섭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어야 하며, 그 시기는 사용자가 근로자의 근로조건개선에 관한 구체적인 요구에 대하여 단체교섭을 거부하거나 단체교섭의 자리에서 그러한 요구를 거부하는 회답을 했을 때 개시하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조합원의 찬성결정 및 노동쟁의발생신고를 거쳐야 하고, 그 방법은 소극적으로 근로의 제공을 전면적 또는 부분적으로 정지하여 사용자에게 타격을 주는 것이어야 하며, 노사관계의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공정성의 원칙에 따라야 하고, 사용자의 기업시설에 대한 소유권 기타의 재산권과 조화를 이루어야 함은 물론 폭력이나 파괴행위를 수반하여서는 아니된다는 것이 당원이 수차 취하여 온견해이고( 당원 1992.7.14. 선고 91다43800 판결; 1992.5.12. 선고 91다34523 판결; 1992.1.21. 선고 91누5204 판결;1991.5.24. 선고 91도324 판결; 1990.5.15. 선고 90도357 판결 등 참조), 여기서 그 목적이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한 노사간의 자치적교섭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 함은 그 쟁의에 의하여 달성하려는 요구사항이 단체교섭사항이 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위 91다34523 판결; 당원 1994.3.25. 선고 93다30242 판결 참조).”
[대법원 1994. 9. 30. 선고 94다4042 판결]

여기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파업의 목적이 “근로조건의 향상”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월급 올려달라고 파업하는 것, 그러니까 다소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는 파업은 허용하겠다는 것이고, 예를 들어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것이 파업의 목적이 된다면 그 자체로 정당한 쟁의행위로 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단체교섭사항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 법제하에서 “좋은 일(?)”을 하기 위한 파업은 사실상 불법 파업이 됩니다. 게다가 파업의 목적이 간접적으로 근로조건의 향상과 관련되어 있다 해도 법원이 이를 인정해줄 것인지는 언제나 불명확합니다. 그래서 상당수의 파업은 형식적으로라도 “임금”과 관련된 의제를 넣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파업이 너무 쉽다는 이야기에 대한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본 것과 같이 정당행위의 “정당성”을 제대로 충족시킨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것은 정말로 큰 문제입니다. 정당성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파업을 이유로 처벌은 물론 손해배상청구까지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자세히 서술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파업을 업무방해죄의 위력행사에 해당하는 것으로 가정한 다음, 그것이 정당행위에 해당될 경우 위법성을 없애 벌하지는 않겠다는 것이 대법원의 종전 태도였습니다. 쉽게 말하면 원래 파업이란 처벌받을 행위지만 특별한 조건을 충족시킬 때에는 처벌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쟁의행위로서의 파업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단체행동권의 한 행사방식인데 그 자체를 위법하다고 가정한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법원은 파업이 반드시 업무방해죄의 위력행사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는 쪽으로 입장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아래 판결 요지를 읽어보시면 좋겠지만 너무 길면 안 읽으셔도 됩니다.

[1] [다수의견] (가) 업무방해죄는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경우에 성립하며(형법 제314조 제1항), ‘위력’이란 사람의 자유의사를 제압·혼란케 할 만한 일체의 세력을 말한다. 쟁의행위로서 파업(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 제6호)도, 단순히 근로계약에 따른 노무의 제공을 거부하는 부작위에 그치지 아니하고 이를 넘어서 사용자에게 압력을 가하여 근로자의 주장을 관철하고자 집단적으로 노무제공을 중단하는 실력행사이므로, 업무방해죄에서 말하는 위력에 해당하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나) 근로자는 원칙적으로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으로서 근로조건 향상을 위한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지므로(헌법 제33조 제1항), 쟁의행위로서 파업이 언제나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것은 아니고, 전후 사정과 경위 등에 비추어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져 사용자의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등으로 사용자의 사업계속에 관한 자유의사가 제압·혼란될 수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 비로소 집단적 노무제공의 거부가 위력에 해당하여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 이와 달리, 근로자들이 집단적으로 근로의 제공을 거부하여 사용자의 정상적인 업무운영을 저해하고 손해를 발생하게 한 행위가 당연히 위력에 해당하는 것을 전제로 노동관계 법령에 따른 정당한 쟁의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되는 경우가 아닌 한 업무방해죄를 구성한다는 취지로 판시한 대법원 1991. 4. 23. 선고 90도2771 판결,
대법원 1991. 11. 8. 선고 91도326 판결,
대법원 2004. 5. 27. 선고 2004도689 판결,
대법원 2006. 5. 12. 선고 2002도3450 판결,
대법원 2006. 5. 25. 선고 2002도5577 판결 등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변경한다.
[대법원 2011. 3. 17., 선고, 2007도482, 전원합의체 판결]

그런데 파업하려는 노조 입장에서, “전후 사정과 경위 등에 비추어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져 사용자의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등으로 사용자의 사업계속에 관한 자유의사가 제압·혼란될 수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가 어떤 것인지 곧바로 알 수 있을까요? 사실 어렵습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모든 부분에서 조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영업방해, 손해배상청구의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것이 파업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파업 중에는 당연히 임금을 지급받지 못합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44조(쟁의행위 기간중의 임금지급 요구의 금지) ①사용자는 쟁의행위에 참가하여 근로를 제공하지 아니한 근로자에 대하여는 그 기간중의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

위와 같은 불이익을 감수해야 시작할 수 있는 것이 파업입니다. 따라서 파업이 너무 쉽다거나, 파업으로 고작 월급올려달라고 한다는 비판은 핵심에서 빗나간 것이 될 것입니다.

파업에 관한 오해들”에 대한 답글 2개

  1. 윤규식 2018-10-24 / 3:18 am

    많은도움되었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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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Chae 2019-09-12 / 4:59 pm

    도움 많이 되었습니다. 참 안타까운건, 정작 근로조건 및 전반적인 처우 개선이 필요해보이는 곳은 노조 조차도 형성되기 어렵다는 점이더라구요..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즐거운 명절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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