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에서는 형법 제269조와 제270조에서 정하고 있는 ‘낙태의 죄’가 헌법에 위반되는지를 판단하고, 조만간(2019. 4. 11.)에 선고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내부적으로 결론이 나 있는 상황일 텐데요. 현 헌법재판소장은 과거 “임신 초기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임신 중절을 의사나 전문가 상담을 거쳐 허용하는 방안을 입법론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지 않나 한다”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고 하므로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헌법과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위헌 여부가 문제 된 법률의 위헌성을 판단하고, 위헌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때 명문으로 정해진 결정의 형식은 사실 ‘위헌’ ‘합헌’ 결정 두 가지뿐입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소위 “변형결정”이라 하는 여러 결정 형식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변형결정의 갈래를 살펴보면, 먼저 “헌법불합치결정”이 있습니다. 보통은 “~는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 위 법률 조항은 0000. 00. 00.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그 효력을 지속한다.”는 주문형식을 취합니다. 헌법불합치결정은 헌법재판소가 해당 법률의 위헌성을 확인하기는 하였지만, 그 법률의 효력을 즉시 상실하도록 할 경우(헌법재판소법 제47조 제2항에 따라 ‘위헌결정’을 받은 법률은 그 즉시 효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법적 공백 등의 부작용이 크게 우려될 때 선고하는 것으로, 통상적으로는 기한을 정하되 입법자가 해당 법률을 개정할 때까지 그 효력을 유지하도록 하는 결정입니다. 물론 주문에서 정한 기한이 도과될 경우에도 그 법률의 효력은 상실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현 헌법재판소장의 발언은 여기에 닿아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한정합헌결정”, “한정위헌결정”이 있습니다. 이는 질적인 부분위헌선언이며 양자가 크게 다른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 보통입니다. 통상적으로 “~해석하는 한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는 주문형식을 취합니다. 입법자의 권한을 크게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법률에 관한 해석 가능성을 축소하여 위헌성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아마 이 사건과 크게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으므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며칠 지나면 이 사건의 결론을 알 수 있겠지만, 저는 적어도 헌법불합치결정 정도는 기대해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헌법불합치결정의 특징은 절차중지와 해당 법률의 잠정적용에 있다고 볼 것이므로, 사건의 당사자가 구제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남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보고 있으므로 당사자의 구제에 있어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결정은 헌법과 헌법재판소법이 규정하고 있지 않은 변형된 형태이지만 법률조항에 대한 위헌결정에 해당하고[ 대법원 2009. 1. 15. 선고 2004도7111 판결, 헌법재판소 2004. 5. 27. 선고 2003헌가1, 2004헌가4(병합) 전원재판부 결정 등 참조], (…) 그리고 헌법재판소법 제47조 제2항 단서는 형벌에 관한 법률조항에 대하여 위헌결정이 선고된 경우 그 조항이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형벌에 관한 법률조항이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한 경우에 당해 조항을 적용하여 공소가 제기된 피고사건은 범죄로 되지 아니한 때에 해당한다 할 것이고, 법원은 그 피고사건에 대하여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따라 무죄를 선고하여야 한다 ( 대법원 1992. 5. 8. 선고 91도2825 판결,대법원 2010. 12. 16. 선고 2010도5986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대법원 2011. 6. 23. 선고 2008도7562 전원합의체 판결 [업무방해·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한편, 헌법재판소에서 변형결정을 도입하기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는 책에서 몇 부분을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변정수 전 재판관은 변형결정에 관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고 합니다.
“”다양한 뜻으로 해석되는 법률이 바로 위헌법률이다. 질적 위헌이라는 주장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런 법률에서 위헌성을 제거하는 것은 입법부 소관이지 헌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으로 해석하는 한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는 주문은 독일어를 직역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 법률문화나 언어감각에도 맞지 않는다. 언어유희 같은 이런 주문을 고집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극히 독선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처사다.” 변정수가 퇴임 이후 펴낸 소수의견집 제목도 <위헌이면 위헌, 합헌이면 합헌>”이다.”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 214쪽
이에 반해, 이시윤 전 재판관은 다음과 같이 대응했습니다.
“”올 오어 나싱(All or Nothing)은 심플한 원시적 사고다. 일본-독일에서도 모두 변형결정을 한다. 국회가 정한 법률을 무작정 부인할 수는 없다. 죽일 것은 죽이고 살릴 것은 살리는 게 합리적인 치료 방법”이라고 했다.”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 215쪽
김문희 전 재판관도 다음과 같이 인터뷰했습니다.
“”법조문 일부만 위헌인 경우에는 위헌적인 부분만 배제하면 된다. 하지만 법조문이 구분되지 않고 이어지는 경우에는 질적 일부가 위헌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도 맞거나 틀리는 것으로 명확히 나뉘지는 않는다. 위헌적인 요소가 있다고 법을 모두 없애버리면 생활관계가 무너진다. 대법원과 일부 마찰이 있지만 독일에서도 결정이 먼저였고 이후 입법으로 해결됐다”고 설명했다.”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 214쪽
더 자세한 논쟁은 “헌재 1989. 9. 8. 88헌가6” 결정문을 참고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사건에 관하여, 헌법재판소는 2019. 4. 11. 다음과 같은 주문으로 선고하였습니다. 헌법불합치결정입니다.
□ 결정주문
형법(1995. 12. 29. 법률 제5057호로 개정된 것) 제269조 제1항, 제270조 제1항 중 ‘의사’에 관한 부분은 모두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 위 조항들은 2020. 12. 31.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
이 사건 심판대상이 ‘형벌조항’이라는 점에서 몇가지 문제가 남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주문을 통해 ‘계속 적용’을 명하고 있으나, 대법원은 ‘형벌조항’에 관한 헌법불합치결정은 일반적인 위헌결정과 동일한 것으로 평가(대법원 2011. 6. 23. 선고 2008도7562 전원합의체 판결 참고)해왔기 때문입니다.
다만, 대법원의 위 판결은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입법촉구기간이 도과된 이후의 것이기 때문에 입법촉구기간이 도과되지 않았으면서 새로 입법도 되지 않은 기간 동안은 어떤 식으로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뚜렷한 기준을 세워뒀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당분간 실무상 혼선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마 검사의 기소유예 또는 불기소처분 선에서 정리가 되거나, 설령 기소되더라도 무죄 판결을 선고하는 방향으로 중지가 모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한편, 법원이 위와 같은 태도를 취하는 이상, 개정입법이 있기 전이라도 헌법재판소의 2012년 합헌 결정 이후 낙태죄로 처벌을 받았던 분들은 헌법재판소법 제47조 제4항에 따른 재심청구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