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계에 의한 간음죄’에서 “위계”의 원래 자리

최근 전원합의체 판결 하나가 나왔습니다.

관련 기사는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8271536001

판결문은 이곳에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1598518654376_175734.pdf에 액세스하려면 클릭하세요.

최근까지 “위계”에 의한 간음을 처벌하는 규정은 있었지만 적용된 사례가 많다고는 볼 수 없었습니다. 최근까지의 대법원의 해석에 따르면 성립 범위가 한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법원이 처음부터 이 “위계”의 뜻을 제한적으로 해석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중략) 피해자와 피고인 두사람의 이 사건과 같은 성교관계에 이른 경위가 당연시 되거나 또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시인될 수 있는 사정이 두 사람 사이에 있다고 볼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을 시인할 수 있는 아무런 자료도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피해자 공소외 2의 연령 경력 직업 환경 및 피고인의 연령 환경과 두 사람 사이의 신분관계와 아울러서 이 사건 여관에 이르게 된 경위 사정 즉 피고인이 미장원 주인 남자로서 그 종업원인 피해자에게 저녁을 사준다는 구실로 데리고 나와서 식사후에 피해자의 숙소로 보내준다고 하면서 상경후 아직 서울지리에 생소함을 이용하여 “뻐스”를 같이 타고 다니는 등 고의로 시간을 지연시켜서 야간통행금지에 임박한 시간으로서 부득히 부근 여관에 투숙치 아니할 수 없는 것 같이 하여 위계로 유인 투숙하고 제1심판시와 같은 위력으로 간음한 점등으로 미루어서 볼 때에 이 사건의 두사람과 같은 사이의 성교관계가 공소외 2 스스로의 승낙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기에는 경험칙상 어렵다 할 것이다.
사실이 이러하다면 제1심판결이 채택한 그 거시의 증거등에 의해서 피고인의 행위는 계와 아울러 위력에 의하여 간음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위 설시와 같은 여관 여주인 정정순 등 원심 채택증거를 탄핵증거라고 풀이하고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의 예비적 공소사실을 인정한 제1심판결의 증거를 그 탄핵증거에 비추어서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하였음은 증거의 취사판단에 있어 채증법칙을 오해한 잘못이 있다 할 것이다.”
[대법원 1976. 2. 10., 선고, 74도1519, 판결]

이처럼 과거 ‘위계에 의한 간음죄’의 해석에 있어 “위계”는 다소 상식적인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이 제정되면서 ‘위계에 의한 간음죄’ 등의 형량이 대폭 상승하였고, 그래서인지 대법원은 “위계”의 해석 범위를 좁혀버립니다. 아래는 그와 같은 대표적 사례입니다.

구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2012. 12. 18. 법률 제11556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제6조 제5항, 제6항은 위계로써 장애인을 간음하거나 추행한 사람을 처벌하는 규정이다. 위 규정에서 말하는 위계라고 함은, 행위자가 간음 또는 추행의 목적으로 상대방에게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고는 상대방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 또는 추행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여기에서 오인, 착각, 부지라고 함은 간음행위 또는 추행행위 자체에 대한 오인, 착각, 부지를 말하는 것이지, 간음행위 또는 추행행위와 불가분적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 다른 조건에 관한 오인, 착각, 부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대법원 2012. 9. 27. 선고 2012도9119 판결 등 참조).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정신장애가 있음을 알면서 인터넷 쪽지를 이용하여 피해자를 피고인의 집으로 유인한 후 성교행위와 제모행위를 함으로써 장애인인 피해자를 간음하고 추행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설령 피고인이 성교 등의 목적을 가지고 피해자를 유인하여 피고인의 집으로 오게 하였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유인행위는 피해자를 피고인의 집으로 오게 하기 위한 행위에 불과하고, 피해자가 피고인의 집으로 온 것과 성교행위나 제모행위 사이에 불가분적 관련성이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피해자가 피고인의 유인행위로 인하여 간음행위나 추행행위 자체에 대한 착오에 빠졌다거나 이를 알지 못하게 되었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피고인의 행위는 위 특례법에서 정한 장애인에 대한 위계에 의한 간음죄 또는 추행죄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장애인에대한준강간등)[인정된죄명: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장애인위계등간음)·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장애인위계등추행)]·부착명령 [대법원 2014. 9. 4., 선고, 2014도8423,2014전도151, 판결]

즉, ‘위계에 의한 간음죄’에서 “위계”는 행위자가 간음의 목적으로 상대방에게 일으킨 오인, 착각, 부지는 간음행위 자체에 대한 오인, 착각, 부지를 말하는 것이지 간음행위와 불가분적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 다른 조건에 관한 오인, 착각, 부지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관련 규정의 연혁을 살펴보면, 1948년 조선법제편찬위원회의 형법기초요강에 이미 ‘지위 기타 위력을 이용한 간음행위’에 관한 규정을 신설할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고♠[1], 1949년의 형법정부초안에서는 현행 형법 제302조와 제303조와 같은 형태의 규정이 만들어졌습니다.

형법초안(법전편찬위원회 초안 및 정부초안)

제325조 [☞제302조] 미성년자 또는 심신미약자(心神微弱者)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 써 간음 또는 외설행위를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제326조 [☞제303조] 업무, 고용 기타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 또는 감독하는 부녀에 대 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간음한 자[,]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 다. 법령에 의하여 구금된 부녀를 감호(監護)하는 자[,] 그 부녀를 간음한 때에는 7년 이하 의 징역에 처한다.
(형사정책연구원, [형법 제·개정 자료집(2009)]에서 인용)

이때 엄상섭 의원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을 처벌하는 규정에 대하여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인 인도주의’의 일환으로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라 평가하였습니다.♠[2] 그리고 엄상섭 의원은 [형법요강해설]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 미풍에 비추어 부녀의 정조는 재산권은 물론이고 때로는 생명권보다 소중한 것임에 불구하고 강자의 지위에 있는 자가 약자의 지위에 있는 부녀의 정조를 농락하는 소행에 대하여는 그[것이] 강간이 아닌 이상 아무런 처벌규칙도 없는 것이 우리 현행 형벌법규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행위를 처벌키 위함이다.
(엄상섭, [형법요강해설], 1948년 9월 30일)♠[3]

시대가 변했으니 ‘부녀의 정조’같은 것은 ‘성적 자기결정권’ 정도로 읽어야 될 것이지만, 피감독자간음죄(업무상 위계-위력 등에 의한 간음)는 지위를 남용하여 본인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하지만 간음행위 자체에 대한 오인, 착각, 부지 등만을 ‘위계’라고 봐서는 위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로, ‘위계에 의한 간음죄”에서 “위계”의 의미는 제자리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무척 반가운 마음입니다.

가. ‘위계’라 함은 행위자의 행위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피해자에게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게 하여 이를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위계의 개념 및 앞서 본 바와 같이 성폭력범행에 특히 취약한 사람을 보호하고 행위자를 강력하게 처벌하려는 입법 태도, 피해자의 인지적ㆍ심리적ㆍ관계적 특성으로 온전한 성적 자기결정권 행사를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 등을 종합하면, 행위자가 간음의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고 피해자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의 목적을 달성하였다면 위계와 간음행위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고, 따라서 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한다. 왜곡된 성적 결정에 기초하여 성행위를 하였다면 왜곡이 발생한 지점이 성행위 그 자체인지 성행위에 이르게 된 동기인지는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가 발생한 것은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하기 어렵다. 피해자가 오인, 착각, 부지에 빠지게 되는 대상은 간음행위 자체일 수도 있고, 간음행위에 이르게 된 동기이거나 간음행위와 결부된 금전적ㆍ비금전적 대가와 같은 요소일 수도 있다.

나. 다만 행위자의 위계적 언동이 존재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므로 위계적 언동의 내용 중에 피해자가 성행위를 결심하게 된 중요한 동기를 이룰 만한 사정이 포함되어 있어 피해자의 자발적인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가 없었다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인과관계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피해자의 연령 및 행위자와의 관계,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 범행 당시와 전후의 상황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다. 한편 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보호대상으로 삼는 아동ㆍ청소년, 미성년자, 심신미약자, 피보호자ㆍ피감독자, 장애인 등의 성적 자기결정 능력은 그 나이, 성장과정, 환경, 지능 내지 정신기능 장애의 정도 등에 따라 개인별로 차이가 있으므로 간음행위와 인과관계가 있는 위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범행 상황에 놓인 피해자의 입장과 관점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하고, 일반적ㆍ평균적 판단능력을 갖춘 성인 또는 충분한 보호와 교육을 받은 또래의 시각에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하여서는 안 된다.

라. 이와 달리 위계에 의한 간음죄에서 행위자가 간음의 목적으로 상대방에게 일으킨 오인, 착각, 부지는 간음행위 자체에 대한 오인, 착각, 부지를 말하는 것이지 간음행위와 불가분적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 다른 조건에 관한 오인, 착각, 부지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종전 판례인 대법원 2001. 12. 24. 선고 2001도5074 판결, 대법 원 2002. 7. 12. 선고 2002도2029 판결, 대법원 2007. 9. 21. 선고 2007도6190 판결, 대법원 2012. 9. 27. 선고 2012도9119 판결, 대법원 2014. 9. 4. 선고 2014도8423, 2014전도151 판결 등은 이 판결과 배치되는 부분이 있으므로 그 범위에서 이를 변경 하기로 한다.
[대법원 2020. 8. 27. 선고, 2015도9436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위계등간음)]


[1]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편, 형사법령제정자료집(1) – 형법, 1990, 11면. (류부곤, ‘미성년자 등 간음죄에 있어서 위력의 의미’, 143쪽 에서 재인용)
[2] 류부곤, ‘미성년자 등 간음죄에 있어서 위력의 의미’, 형사법연구 제25권 제1호 143쪽 참조.
[3] 장다혜, “업무상 위력 간음에서의 ‘위력’ 해석, 「위력에 의한 성폭력과 2차 피해, 긴급토론회 자료집」,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2018, 37~38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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