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는 왠지 김현의 “증오와 폭력”을 읽고 싶었다. 당연히 집에 있겠거니 했으나 없는 걸 보면 고향집에 두고 온 모양이다. 아쉬운 대로 예전에 해둔 메모를 훑어보다 생각나는 것이 있어 이렇게 묶어 보았다.

186쪽
“(…)사정이야 어떠했든 노인은 이 모든 일이 불결하고, 따라서 언례도 갑자기 불결해졌다는 생각이 앞섰다. 아무리 꼼짝도 못하고 당한 처지라고 해도, 도대체 그럴 수가…… 옛날 같았으면 여자가 양잿물을 먹고 목숨을 스스로 끊었으리라.” 황노인의 사유 중에서 제일 핵심적인 곳은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이라는 곳이다. 사정이야 어떠했든 그녀는 불결하다;

193쪽
만인 대 일인의 싸움이 있어서, 만인의 결속이 이뤄지는 과정은 느리고 다양하지만, 한번 이뤄지면, 그 결속의 강도는 높다. 그 결속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피해를 적게 보고 싶다; 피해를 나눠받고 싶다라는 마음의 움직임이다.

—분석과 해석, 김현—

 

193쪽
데이비드 리잭은 강간당했다는 말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취약함은 우리를 마음 깊이 두렵게 한다. 자신의 몸이 다른 인간에 의해 강제로 꿰뚫린다는 것은 끔찍할 만큼 철저히 취약하고 무력한 느낌을 주는 경험이기에 대다수 사람은 생각만으로도 움츠러들고 만다. 그런 거부감을 극복하고 진정으로 그 경험에, 그리고 그 일일 겪은 사람에게 감정이입한다는 것은 깊은 공감 능력과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솔직히 그런 어려운 일을 기꺼이 감당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 허위 신고 문제가 뿌리를 내린 것은 바로 이런 식으로 최적화된 토양 때문이다. 같은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강간 피해자를 피하거나 한시바삐 치워버리고 싶다는 욕구를 느낄 때, 그 여성이 모든 것을 지어냈다는 억측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쉬운 방법은 없다. (…)”

—강간은 강간이다, 조디 래피얼—

명예훼손과 모욕에 대한 대략적 이해

명예훼손과 모욕죄에 대해 아주 대략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무엇이 명예훼손이고 모욕인가. 이런 저런 어려운 이야기가 있지만 실제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어떤 안 좋은 말을 했는지’ 입니다. 그리고 아래에서는 피해자가 고소하는 등 해당 발언을 문제 삼은 것으로 가정하겠습니다.

어떤 말이 ‘사실’을 담고 있을 경우에는 명예훼손, 단순히 ‘의견’에 불과할 경우에는 모욕이 문제됩니다. 예를 들면 “A가 (A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 만한 사실)B를 했다”고 했을 때엔 대체로 명예훼손 문제가, “A는 싸가지가 없다”고 했을 때엔 모욕 문제가 될 것입니다. 물론 사실과 의견의 구별이 항상 쉬운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고요. 계속 읽기

근로계약의 해지

당황스러운 기사를 보았다.

ㄱ 기자> 왜 직장인 사이에서 ‘퇴사=30일 전 통보’가 정설처럼 되어 있죠?

ㅇㅌㅇ 노무사> 근로기준법 제26조의 ‘사용자는 근로자를 해고(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를 포함한다)하려면 적어도 30일 전에 예고를 하여야 한다’라는 조항과 민법 조항 등이 뒤섞이면서 일종의 도시전설처럼 굳어진 게 아닐까 싶어요.

ㄱ 기자>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퇴사 통보를 언제 할지 고민하는 글들을 살펴보면 댓글에 ‘30일 전 통보’의 근거로 민법 조항을 끌고 오는 누리꾼도 많던데요.

ㅇㅌㅇ 노무사> 민법 제660조 ‘기간의 약정이 없는 고용의 해지통고’ 2항의 ‘상대방이 해지의 통고를 받은 날로부터 1월이 경과하면 해지의 효력이 생긴다’는 부분 때문에 많이들 오해하는데요. 이건 사실 사표 수리를 차일피일 미루는 사용자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고자 생긴 항목이거든요. 사표를 냈는데 몇 달씩 수리를 안 해주면 곤란해지잖아요. 1항에 ‘고용기간의 약정이 없는 때에는 당사자는 언제든지 계약해지의 통고를 할 수 있다’라고 쓰여 있는 것만 봐도 이 법이 근로자를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죠.

원문 보기 :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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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형법 문제

얼마 전 ‘주취감형’ 폐지를 위해 20만 명 넘게 청원을 하였다는 기사를 보았다. 아마 형법 제10조 제2항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실은 취해서 저지른 범죄라 하여 반드시 감형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제 정신으로는 저지를 수 없을 범죄를 저지르기 위하여, 일부러 만취하여 실제 그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에는 현행 형법 제10조 제3항으로도 규율이 가능하므로 위 청원에 아주 약간의 오해는 있어 보인다. 계속 읽기

공적 관심을 받는 인물

이런 기사를 보았다.

“연예인 등 공적 관심을 받는 인물에 대한 모욕죄를 살필 때 비연예인과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다”(무죄를 선고한 2심).
출처 : http://news.joins.com/article/22155484

판결문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공적 관심을 받는 인물”이라고 하였으니 기존의 “공인”이나 “공적인 인물”과 같은 의미이거나 비슷한 의미라고 보아도 될 것 같다. 여기서 공인이나 공적인 인물이나 공적 관심을 받는 인물이란 대체 무엇인가. 실은 분명하게 정리된 것 같지는 않다. 일단 공인이란 보통 고위 공무원을 의미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공적인 인물은 공무원은 아니지만 공인과 유사한 지위에 있는 사람을 의미했던 것 같다. 여기서도 비슷하게 사용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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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보좌관 업무영역 확대

얼마 전 가결된 “법원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따르면 사법보좌관의 업무영역이 더 늘어난다고 한다. 기존의 업무영역은 다음과 같았다.

제54조(사법보좌관)
② 사법보좌관은 다음 각 호의 업무 중 대법원규칙으로 정하는 업무를 할 수 있다.  <개정 2016.3.29.>
1. 「민사소송법」(같은 법이 준용되는 경우를 포함한다) 및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른 소송비용액·집행비용액 확정결정절차, 독촉절차, 공시최고절차, 「소액사건심판법」에 따른 이행권고결정절차에서의 법원의 사무

2. 「민사집행법」(같은 법이 준용되는 경우를 포함한다)에 따른 집행문 부여명령절차, 채무불이행자명부 등재절차, 재산조회절차, 부동산에 대한 강제경매절차, 자동차·건설기계에 대한 강제경매절차, 동산에 대한 강제경매절차, 금전채권 외의 채권에 기초한 강제집행절차, 담보권 실행 등을 위한 경매절차, 제소명령절차, 가압류·가처분의 집행취소신청절차에서의 법원의 사무

3. 「주택임대차보호법」 및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상의 임차권등기명령절차에서의 법원의 사무

신설될 부분은 다음과 같다.

4.「가사소송법」에 따른 상속의 한정승인·포기 신고의 수리와 한정승인취소·포기취소 신고의 수리절차에서의 가정 법원의 사무

5. 미성년 자녀가 없는 당사자 사이의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협의이혼절차에서의 가정법원의 사무

물론 실질적으로 쟁송과 관련이 적은 업무를 사법보좌관에게 돌려 판사가 보다 더 중요한 사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은 알겠다. 하지만 사법보좌관은 지금도 ‘판사 대신’ 너무 많은 것을 하고 있지 않나? 판사 수를 늘린다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 대신 때움질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통계까지 찾아볼 일은 아니지만, 2013년 기준 지방법원 판사 1인당 사건 수가 연평균 700건을 넘겼다는 기사는 본 적이 있다. 지금은 더 늘어났을 텐데 계속 그대로 둘 것인지.

아픔이 길이 되려면

매우 인상적인 책이었습니다. 글에서 글쓴이의 선함이 느껴지는 경험은 오랜만이었고요. 사회역학이라는 다소 낯선 주제지만, 그 낯섦이 책을 읽어나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전문가가 쓴 전문가를 위한 책이 있을 것이고, 전문가가 쓴 일반인을 위한 책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자는 몰라도 후자가 괜찮은 책이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전문가는 많은 것을 알지만 일반인들이 얼마나 아는지는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계속 읽기